산악부에서 두 번째 산을 다녀와서 2번째 산행기를 쓰려합니다.

지난 1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비싼 돈들여서 재미난 운동하면서 건강 챙긴다는 핑계로 실내암벽만을 고집했습니다. 대중적이지는 않은 운동이라 밖에다 허세부리기도 좋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암장 선배님께서, 한 3개월 하셨나봐요"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두고, 집앞에서 철봉만 매달리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문득 왜 나는 아직도 자연암벽을 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갈 기회는 있었지만, 의욕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이번 학기에는 꼭 해내야 겠다는 다짐이 섰습니다. 안그래도 늦게 건악에 들어와 배울 것도 많은데 밍기적 거리는 것이 대장형께 너무 미안한 마음도 다짐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동기로 3주전부터 설래면서 기다린 산행이 인수a 등반이었습니다. 출발날이 시험이 있는 날이었는데, 밤 새다가 인수봉 등반기는 보이는대로 검색해서 찾아읽으면서 시간을 더 보냈던 것 같네요. 설램과 불안함이 함께한 새벽이었습니다.

 

불안함은, 제가 한 번도 자연암벽에 붙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서 왔습니다. 슬랩을 어떻게 오르는지도 모르고, 등반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도대체 그렇게 가파른 돌에는 어떻게 붙어있는지 전혀 아는게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산이 처음이었습니다.

(길어지네요.ㅠ 스피디하게 진행시키겠슴다)

 

재근이형이랑 야영장비 챙겨서 의수형님과 합류후 17구역에 자리를 잡고, 맛있는 돼지김치라면찌개꿀꿀이죽 을 만들어서 먹고 12시 땡하는 순간 잠이 청했습니다.

6시에 땡 하고 기상을 하니, 제가 산에 있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찬 산공기가 아침에 마시던 물보다 상쾌했습니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몸을 가볍게 만든 후 장비를 챙겨 대슬랩으로 갔습니다. 창호형께서 합류하시기 전까지 대슬랩에서 하강기술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암벽화를 신고 바라본 대슬랩은 참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화강암은 참 신기한게 멀리서보면 참 부드럽고 온화해 보이는데, 가까이서는 거칠었고 위압감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10손가락 끝을 살짝 바위에 얹고 오른발 끝을 꾸욱 눌러주며 체중을 싣는 순간 바위의 이미지는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미끌어지는 모습만 상상했지만, 의외로 슬랩은 저를 잘 받아주었습니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바위가 고마웠습니다.ㅎㅎ 그렇게 하강과 슬랩 오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대슬랩 위에서 바라본 서울은 안개 밑에 잠겨 있었어요. 그래서 북한산 중턱 위와 아래는 뚜렷한 경계가 있었는데, 저희는 그 위에 있었으니 천상의 사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쉬운 점은 등반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먼저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등반내내 자상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아주신 창호형께서 오시고 본격적으로 인수a를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데, 저희는 물길 따라 만들어진 길을 통해 오아시스를 가기로 했습니다.

 

재근이형이 선등을 섰고, 의수형님 창호형님 그리고 저 순서로 등반을 했습니다.

스탠스로 올라가는 구간부터는 정말 막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부터 다리가 춤을 추기 시작해서, 제대로 체중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보이는 것은 닥치는대로 잡으면서 올랐습니다. 창호형께서 자일로 끌어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두려움이 조금 덜했습니다. 형께서 제가 올라온 것이고 세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침니 구간은 가방을 맨 채로 오르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침니 가장자리의 바위 날을 잡고 댕기면서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처음으로 이 곳에서 그냥 내려가는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 눈 앞의 홀드만 보며 가니 어느새 헬멧 위로 형들 발이 보여서 기뻣습니다.

 

 

이 때부터는 암벽화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팠습니다. 등반할 때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시작할 때와, 쉴 때는 정말 고통이 크더군요.ㅠㅠ 좁은 곳에서 쉴 때는 벗지도 못하고 슬펐습니다. 차라리 계속 이어서 오르면 덜 아플 것 같았습니다. 빨리 암벽화 오래 신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네요..그래도 잠깐씩 쉬면서 바라보는 발 밑 풍경과, 내리 서울 풍경은 진통제로 충분했습니다.

 

 

 

영자크랙 바위에서 의수형께서 정상에서 뭐 마시고 싶냐고 하셔서 자판기에서 음료 뽑으려고 동전 준비할 뻔 했습니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어리버리어리버리 한 상태로 네? 네? 네? 만 연발했습니다..,ㅋㅋ 그냥 도선사에 다녀올 걸 그랬나요?ㅋㅋ

 

참기름 바위부터는 심장이 계속 뛰었습니다. 정상을 앞두고 이제 정상이다 신나 하면, 길이나오고, 바위가 나오니 계속 안달나더라구요. 진짜 인수봉에 도착해서 커다란 바위를 마주하고서야 온 몸에 짜릿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숙원이었던 것을 마무리한 개운함도 컸습니다. 반대편 맞은 봉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보는 시선도 느껴져서 내심 우쭐했습니다. 마치 선택받은 느낌? 그러면서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나는데, 지금보다 무릎이 더 안좋아져 더 늦기 전에 어떤 봉우리든 함께 올라서 정상에서 함께 경치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아. 아리네요.

 

 

꿀같은 소주와 간식을 즐기고나니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그자리에서 자고 싶지만 내려가는 것도 일이네요. 물론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형들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도와주셨습니다. 아찔한 절벽에서 자일을 묶고 하강준비하는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제가 나중엔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모자란 머리로 잘 기억이 되지 않으니 참 답답합니다.ㅠ 열심히 배우겠슴다.

 

머릿속과 손끝에 남아있는 바위 느낌에 완전히 매몰된 채 멍하게 야영지로 돌아와서 집에 갈 채비를 했습니다. 잠깐 다른 세계에 있다온 느낌에 현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선배님들과 식사할 때, 의수형님 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갈때까지 계속 얼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핸드폰 놓고 내렸나봐요.

 

내려온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손 끝이 아직도 뜨겁고 붉게 달아올라 있네요. 어쩌죠.

 

첫 등반은 강렬하고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멋지게 인수a 첫 선등에 성공한 재근이형, 후배들 챙기랴, 선배님들 모시랴 항상 모범 보여주시는 의수형님, 그리고 앞에서 나긋나긋이 제게 조언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창호형 제 등반 멋지게 꾸며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칸산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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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소감을 적어주실래요?
  • 임의진 2012.06.09 20:07

    글이 점점 매끄럽고 부드러워지는게 느껴진다~~ 그런데 암벽등반 용어라든가 축약어 사용할 때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울님 감상적인 글도 잘 쓰네.. 나한테는 별로 감상적인 것 같지 않더만 ㅋㅋ


 산을 좋아합니다. 올라가며 마시는 신선한 공기가 좋고, 나무들이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고, 그림자와 햇빛으로 만들어진 점묘화 같은 산의 모습이 좋았고, 또 제가 흘리는 땀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산을 오를 기회는 없었고, 다만 동경할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겨울산행이라니요. 한 번도 할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건대 산악부의 일원으로 다녀오게 되었네요.

 

-준비-

 출발 하기 전부터 우왕좌왕 했습니다. 옷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고, 챙겨야 할 장비는 무엇인지, 올라가는 길은 어떤 곳인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출발 전 날을 보냈습니다. 제가 가져간 옷은 제대로된 등산복이 아니었습니다. 유니클로에서 산 바람막이, 양말, 기능성 속옷, 보드 장갑, 평소에 입던 코데즈콤바인 패딩잠바 그리고 새로 마련한 겨울용 등산바지가 제 체온을 책임져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대장형의 지도 아래 어택에 두꺼운 침낭과, 한솔이가 가져온 수많은 간식과 음식들, 텐트 등을 꼭꼭 쑤셔 넣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 등반 장비도 하나하나 챙겼습니다. 가방의 무게를 재보니 25키로. 훈련소에서 메었던 것과 얼추 비슷한 무게라 별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어째 왼쪽 어깨가 아프고 뒤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있어 불길했지만, 처음 매는 것이니 몇 번 칭얼거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부실에서 잠에 들기 전 전화한 여자친구가 마치 소풍 가는 어린아이 같은 들뜸이 목소리에서 들려온다고 했습니다. 이곳 저곳 방학이면 가까운 곳이든 대양을 건너서든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제가 이렇게 설렜던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번 산행은 시작 전부터 저에게 너무나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설렘 덕분에 얕은 잠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출발-

5시 기상. 잠에 깊이 빠져 있지 않았기에 또렷한 정신으로 어택을 매고 강변역으로 갑니다. 영재가 일감호를 지나면서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콧방귀로 답해주었습니다. 뭐 지금이라도 똑 같이 반응 했을 것 같아요.

강변역 동서울 터미널에서 백담사로 가려면 휴게소에서 다른차량으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다 왔다는 생각과 함께 강원도의 맑고 찬 공기가 느껴져서 더욱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처음에 백담사행 버스를 탔으니 절 앞이나 근처에 내려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려준 곳은 대로변이었는데 표지판에만 백담사 방향이 나와 있을 뿐, 심지어 이곳이 설악산 입구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 한참 걸어야 백담사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대장형이 도로를 걸어야 한다니 짜증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산길보다 도로가 더 편할 것 같아서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버스에서 하차한 곳 근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이중화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중화가 저를 그토록 괴롭힐 줄은 몰랐습니다. 두꺼운 양말을 두 겹을 신고 신발끈을 꽉 조이며 제발 물집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군화신고 행군해도 물집이 잡히지 않았는데, 이중화 신고 생기겠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바로 배신당하더군요. 백담사 가는 몇키로 안되는 거리를 걸으면서 뒤꿈치가 계속 들리는 좋지 않은 느낌에 계속 끈을 고쳐 매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점점 오른쪽 뒤꿈치에서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설악산에 들어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도 이른 물집의 출현에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백담사에서 잠시 쉬며 뒤꿈치를 확인해 보니 오백원 동전보다 약간 더 큰 크기의 물집이 이미 터져 있었습니다. 대장형이 준 붕대로 감아주는 것으로 조치는 하였지만 이런 적이 처음이라 앞으로 어떻게 걸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뭐 이럴수도 있지요. 다이나믹한 산행을 할 수 있겠구나 하며 입산을 합니다.

 

         

 -운행중 첫째날-

 <고통의 이중화, 다리의 쥐, 목마름>

처음엔 이중화 때문에 뒤꿈치의 상처가 쓸려 따갑고 아팠지만, 점점 더 참을 수 있고, 대수롭지 않은 자극이 되어갔습니다.. 단지 몸이 아픈 것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꾸는 바람에 걷는 모양새가 우습게 된 것이 신경 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클램폰을 신고 운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곳에도 통각이 활성화 됩니다. 오른쪽 이중화의 목 부분이 복사뼈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아주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는 고통이었습니다. 고통은 머리에서 느낄 뿐이다 라며 최면을 걸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되어 제가 가져온 경등산화로 갈아신고, 대장형의 아이젠을 끼워 운행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날개를 단 느낌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상만 조심하면 충분히 오늘 목표한 중청 대피소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 느린 페이스로 일정이 많이 지연이 되었고, 중청으로 가는 길은 많이 멀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5시에 지는 해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비박, 야영 등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지만, 주위에 수북히 쌓인 눈과 추위에 밤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습니다. 저만 아니었으면 빨리 갔을 거란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분이 오신 것은 제가 걸음을 빨리 한지 몇시간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그렇게 아픈 것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중간 중간에 만나는 계단들이 문제의 시발이었습니다.(감정 아님) 가파른 계단에 쌓인 눈을 조심조심 밟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대퇴부 근육이 강하게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계단에서는 쉴 수 없었기 때문에 근육이 더 수축하게 만들지 않고 절뚝거리며 마저 올라갔습니다. 마치 근육 섬유 사이에 돌덩이가 낀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대장형은 가방을 풀고 쉬라고 합니다. 이렇게 또 시간이 지연이 되었습니다. 대장형은 쥐가 한 번 났으니 앞으로 계속 날 것이라고 합니다. 한솔이와 영재는 미리 출발시키고 저와 형만 남아 조금 더 쉬었습니다. 어택에 누워 능선을 넘어가기 시작하는 해를 보니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니 물이 얼어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계속 눈만 퍼먹었습니다. 대장형이 말하는 땅콩버터 맛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계단에서 4번 정도 쥐가 더 났고, 결국 영재와 도중에 가방을 바꾸었습니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제 가방이 더 무거웠기에 영재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부담이 된 다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이정표에 봉정암, 소청, 중청까지 2~3키로 정도라고 되어 있을 때, 해는 이미 완전히 진 상태였습니다. 헤드렌턴을 켰고, 이제는 불 빛 아래 눈길만 보고 걸어야 했습니다. 낮에 운행할 때보다, 발을 딛는 곳의 위치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매우 경사가 심해서 4 발로 기어가다시피 하였습니다. 경등산화라 미끄러지는 것에 최대한 주의하여 올라갔습니다. 확실히 접지되는 느낌이 별로 나지 않아 그 때만큼은 평소보다 각성된 듯 했습니다. 무서웠거든요. 그래도 그 덕분에 안전하게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사를 다 오르고 나니 봉정암이 보였습니다. 텐트자리를 알아보다가 봉정암 관리인 분께서 저희에게 방을 내주시겠다고 하셨고 저희는 그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그날 밤은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먹은 막걸리와, 김치찌개는 다시다 이상으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덕분에 꿀 같은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운행 둘째 날-

<대청봉, 바람, 이놈의 이중화, 오스굿병에 걸린 무릎>

5시에 일어나서 떡국을 먹고 출발준비를 합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바깥은 여전히 어제 밤처럼 어둡습니다. 봉정암의 전체 모습은 끝내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약간의 알이 베긴 것 말고는 컨디션이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만큼은 모든 고통을 참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전날 못 신은 이중화를 이번엔 단단히 끈을 조이고 클램폰을 끼고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아픈 신발이지만 대청까지 2키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신나게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 보지 못한 설악의 전경도 서서히 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동쪽엔 동해가 있었고 반대편엔 파도가 얼어붙은 듯한 모양으로 설악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차가운 공기와 바람만 있다면 그 때 당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램폰이 있으니 눈이 두껍게 쌓여 있어도 경사를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기들도 마찬가지라서, 여전히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소청을 지나 중청을 가는 길은 아찔했습니다. 러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한솔이가 러셀을 하면서 갔는데, 제가 몸이 너무 무거운지 계속 눈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도대체 눈이 얼마나 쌓였으면 허리까지 빠지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또 왜 낭떠러지 옆의 좁은 길로 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는 그 곳이 난간이 있는 계단 길이지만 눈이 그 위를 덮고도 더 쌓여 길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칼 같은 바람(영재가 말한 knife wind) 얼마나 세게 부는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그 눈길을 생각하면 미끄러지지 않은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뿐입니다.

낭만적인 분위기의 로그하우스처럼 생긴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여 잠시 쉬면서 오색길로 내려가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러셀이 잘 되어 있고, 다른 길로 가기엔 무리라는 첨언도 있었습니다.

중청을 나와 눈앞에 보이는 대청봉을 향해 정신없이 올라갔습니다. 대청봉은 눈 대신 돌이었고, 돌 대신 바람과 싸움이었습니다. 초보한테 바람을 이기고 무게중심 잡는 것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길에 달린 로프를 잡고 올라 겨우겨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람이 더 강해서 사진 찍다가 떨어져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내려오는 길에 한 번 굴러주었습니다. 다행히 푹신한 어택 덕분에 다치진 않았습니다.

오색길은 무척 가파르고 계단이 많고, 빠른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이 저에게 큰 걱정이었습니다. 최근에 안 것이지만 제가 왼쪽 무릎에 오스굿 병이 있는데, 무릎의 슬개골 윗뼈가 튀어나와 슬개건이 오른쪽보다 약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산시 주의를 하곤 했는데 경사가 너무 심한 나머지 무릎에 피로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계단을 뒤로 걸으며 내려오고, 글리세라이딩 하며 겨우겨우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대장형이 가방을 바꿔 들어주신 것이 큰 도움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어택 없이 무릎을 굽혔다가 피는 것 조차 힘에 부쳤는데 그 모습을 스스로 보며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과, 부끄러운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구요. 앞으로 왼쪽 다리를 단련을 많이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듭니다.

 

-정리-

 1 2일 설악산 다녀온 주제에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훈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 동안 보지고 겪지도 못한 것들을 경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전 이번 산행이 너무 좋았습니다. 비록 글에는 힘들고 아팠다는 징징거림 밖에는 없지만, 그 고통스런 감각 아래에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즐거움이 항상 있었습니다. 또 동기들과 대장형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도 아주아주 짙게 깔려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제가 딛는 발 한걸음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치를 제대로 못 본 것입니다. 지나던 곳 모두가 절경인데, 당장 내 몸이 급하면 그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 봅니다. 사진도 몇 장 없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가장 오래 기억될 사진들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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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진 2012.06.09 20:03

    그날 진짜 소풍 가는 애처럼 들떠 있더랬지... 돌아왔을 때 곳곳에 상처와 얼굴 상한거보고 엄청 속상했는데... 그래도 좋은 경험한 것 같아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