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똑똑'했다. 나도 '똑똑'했다. 문밖의 그는 나의 '똑똑'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화장실을 소재로 한 실없는 우스개(a shaggy-dog story)다. 옛날엔 화장실을 뒷간, 측간, 변소(便所)라고 했다. 사찰에선 근심을 푸는(free oneself of anxious thoughts) 장소라는 뜻으로 해우소(解憂所)라 했다.

한국의 전통 옥외 뒷간을 정원 디자인에 접목한(graft a traditional Korean outdoor latrine onto the garden design) 황지해(35)씨의 작품 '해우소'가 영국의 정원·원예박람회 첼시플라워쇼에서 아티즌가든 최고상을 수상(be named the best artisan garden award)했다.

"정원에 웬 변소?" 처음엔 모두들 눈살을 찌푸렸다(knit their brows). 그러나 "한국에선 몸을 비우는(empty one's body) 것을 곧 마음을 씻어내는(cleanse one's mind)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nod their heads) 시작했다.

"몸을 추스름으로써(attune the body) 마음의 평화를 얻고(attain peace of mind)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a cathartic experience)이다. 용변을 본 뒤(after attending to the call of nature) 인간의 분뇨(human waste)거름으로 재활용돼(be recycled into manure) 물리적·정신적으로 자연과 하나가 된다(be at one with nature both physically and psychically)."

"1.2m 높이로 낮은(be low at 1.2m high) 해우소 입구(the entrance door)들어가면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머리 숙여 인사하는(lean forward and bow to go inside) 자세가 되도록 함으로써 겸손해지게(thus humble oneself) 한다"는 설명에는 감탄사를 터뜨렸다(utter an exclamation).

해우소 가는 길(the pathway to the outhouse) 주변에는 암 예방 효과가 있다는 하얀 민들레(white dandelion known for cancer prevention), 공기를 정화하고 인체의 신장·간·방광에 좋다는 질경이(plantain good for kidneys, liver and bladder), 장기들을 보호하고 신경을 안정시켜준다는(protect the organs and calm the nerves) 인삼, 공기정화 특성 때문에 우주공간에도 가져갔던 담쟁이덩굴(ivy taken into outer space for its air purifying quality) 등이 야생 본래의 모습으로(with an untouched appearance with wild plants) 심어져 호평을 받았다(acquire a favorable reputation).

하지만 이런 해우소라고 해도 한 사람이 안에서 사색(思索)에 잠겨버리면(be absorbed in contemplation)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사색(死色)이 되고(turn deadly pale)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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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시 궁금해 하지도 않을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기포트는 물을 빠르게 끓일 때 사용하는데, 이는 2000w 의 대용량 열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결국, 냄비에 물을 끓이는 것과 똑같이 물이 끓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포트의 특별한 점이 있으니, 바로 끓는 보글보글 소리이다.
주전자나 냄비와는 다르게, 전기포트는 틀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는데 나는 그 소리가 무척 궁금했다.

조그마하고 수많은 쇠구슬이 한 번에 떨어지는 소리, 혹은 드럼셋의 스네어 소리랑도 비슷하다.
그러다가 점점 소리가 굵어지더니 이내 보글보글 된장 끓을 때 들리는 정겨운 노래를 부른다.

어쨋든 항상 전기포트 뚜껑이 안전상 닫혀 있어서 안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는데, 구청 휴게실 전기포트는
뚜껑이 열려서 그 소리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관찰 기록]
처음에 물을 붇고 포트의 스위치를 키면, 바닥에 수많은 기포가 생긴다.
기포들이 빠르게 요동치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고음의 소리가 들린다.
점점 기포들이 커진다. 점점 소리가 낮아진다.
어느 순간 어느정도 커진 기포들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표면에서 기포가 터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기포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수면이 아주 역동적으로 끓을 때 스위치가 꺼진다.


[결론]
소리의 정체는 기포의 크기와 그 움직임과 관련있다.
스위치를 키자마자 금속 전열판 위에는 조그마한 기포들이 많이 생긴다.
이 기포들이 전열판을 치면서 고음의 짧은 소리를 내는데, 수많은 기포들이 릴레이로 전열판을
때리면서 드럼 스네어 같은 소리가 난다.
그리고 기포가 커지면서 점점 저음이 되고, 반복 횟수는 적어지면서, 보글보글 거리는 느린박자를 가진 소리가 나게 된다.
소리의 높낮이는 기포의 질량과 관계가 있다. 작은 구슬의 충돌 소리가 더 높고 무거운 구슬의 충돌 소리가 낮은 것 처럼 기포의 크기 및 질량에 따라 커피 포트에서 나는 소리가 달라지게 된다.



이상 뻘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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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를 이용한 프로그래밍 가능 컴퓨터가 선보여, DNA 컴퓨터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와이즈만 연구소 (Weizmann Institute)는 DNA 1조개를 하나로 모아 초당 10억회의 연산을 할 수 있는 DNA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만한 양의 DNA를 하나로 모을 경우 물방울 크기 정도다. 

DNA를 일반 실리콘처럼 정보 저장과 처리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는 착안은 94년 남캘리포니아 대학 Leonard Adleman 교수가 DNA를 테스트 튜브에 넣어 단순한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처음 현실화됐다. 이후 전세계 십여개 연구소들이 생물학(BT)과 정보기술(IT)을 융합시킨 이 분야에 뛰어들었으며, 초당 수 조번의 동시 연산이 가능한 DNA의 숨은 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크기 정도의 물질을 이용해 그토록 많은 횟수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작아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의 실리콘 칩의 소형화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DNA 분자는 모든 세포의 핵에 이중나선 형태로 존재하며, 알려진대로 세포의 유전 정보를 아데닌(A;adenine), 티민(T;thymine), 시토신(C;cytosine), 구아닌(G;guanine)의 4가지 염기조합으로 저장하고 있다. 이 DNA 분자를 1입방센티미터 안에 집적할 경우 보통 음악 CD 1조장 분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4가지 염기는 정해진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결합되는데 이들은 복잡하게 조합하면서 하나의 패턴으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복잡한 염기 조합의 패턴은 인체내에서 자연 발생하는 효소에 의해 읽혀진다. 
와이즈만 연구소 (Weizmann Institute)가 DNA를 계산기처럼 작동하도록 만들었던 것은 지난해 위스콘신 대학 (University of Wisconsin) 연구팀이 DNA 가닥들을 유리 슬라이드에 고정시켜 DNA 칩을 만들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과학자들은 DNA를 마이크로프로세서로 활용하는 일이 아직은 요원하기 때문에 DNA가 실리콘 기반 컴퓨터를 대체한다기보다 이를 보완하는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혼합형 컴퓨터 

DNA 컴퓨팅 분야에서 처음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리버풀 대학 (University of Liverpool)의 마틴 에이모스 (Martyn Amos) 교수는 ``앞으로 컴퓨터는 실리콘과 DNA 프로세서를 공동으로 사용하며, 통상적인 처리 작업은 전통적인 실리콘 프로세서가 하고 DNA 프로세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특정 과업은 DNA가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DNA 가닥은 기존 실리콘 칩 기반의 데스크탑 PC가 하나의 연산을 매우 빠르게 수행하도록 설계된 것과는 달리 동시에 수십억 개의 답을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DNA 가닥은 2진법 연산보다는 가능한 많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이른바 퍼지논리 (fuzzy logic)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다. 

과학자들은 DNA가 새로운 컴퓨팅 매개 물질로서 흥미를 끌고는 있지만 수가 큰 문제를 풀기 위해 연산을 확장할 수 있는 소위 scalability를 아직 DNA에 구현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애들만 교수가 최초로 DNA 테스트 튜브를 이용해 풀었던 수학 문제는 14개의 일방통행 도로를 연결한 7개 도시를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최단거리를 찾는 이른 바 `세일즈맨의 여행 문제'였다. DNA 테스트 튜브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순열을 만들었고 생화학적 반응을 이용해 그 중에서 정확한 순열만을 가려냈다. 

하지만 문제는 순열의 수가 커질수록 필요로 하는 DNA도 많아지며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DNA 수를 감당할 수 없다. 에이모스 교수는 ``세일즈맨의 여행 문제를 7개 도시에서 200개 도시로 늘리면 모든 가능한 순열을 하나씩 대표하는 DNA들을 합친 무게가 지구 무게를 넘어설 것''이라고 추산했다. 대표적인 컴퓨터업체인 IBM은 바로 이같은 문제 때문에 생물학적 물질보다 탄소 나노튜브와 양자 컴퓨팅처럼 원자에 집중하고 있다. 


똑똑한 세포 

DNA 분자는 당장 DNA 컴퓨터 제품으로 만들어지진 않겠지만 우선 제약산업에서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와이즈만 연구소 DNA 컴퓨터 연구팀장 에후드 샤피로 (Ehud Shapiro) 교수는 DNA 나노기기가 인간 세포내에 삽입될 경우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세포 변화를 감시하고 세포가 이상 변화를 보이면 약을 종합적으로 세포에 전달해 암과 같은 세포의 이상 변화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살아있는 세포에는 유전 정보를 기호화해서 저장한 DNA와 RNA분자들을 컴퓨터처럼 조정하는 신비한 해독 분자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정보 해독 분자를 효과적으로 수정하거나 새로운 분자 기기를 만드는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신체내 여러 시스템이 정보를 가진 분자와 결합해 컴퓨터처럼 작동하도록 조정하는 체내 기기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DNA 컴퓨터는 이른바 '스마트 박테리아 (smart baterium)'내에서 진단기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화학물질이 존재하면 활성화되는 작은 논리 회로가 스마트 박테리아의 게놈 (염색체 1조)에 포함되도록 스마트 박테리아의 게놈을 재조정할 수 있다면 그 논리 회로는 스마트 박테리아내에서 특정 화학물질에 대해 진단 기기 역할을 할 것이다. 

에이모스 교수는 ``DNA 컴퓨팅 분야는 이제 걸음마 단계지만 5 ~ 10년 후면 현실적으로 응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출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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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의법칙0.1초에결정되는당신의매력
카테고리 자기계발 > 화술/협상 > 대화와화술
지은이 프랑크 나우만 (그책,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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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처세술' 코너에 가면 공통적으로 책들이 다루는 주제는, 남들에게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였고, 다양한 관점에서 쓰여진 많은 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은 책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기를 누리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서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능력이 아무리 출중한 사람이라도,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능력을 충분히 활용을 할 수 조차 없다. 오히려 능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능력치를 주변 인맥을 통해서 보충할 수 있는 자를 모든 조직에서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단순히 만나다고 해서 서로에게 바람직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호감가는 인상을 가지고 있어야, 상대가 나를 받아들이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혹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나 호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고민을 던지고 있으며,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처세술 관련 책들이 베스트 셀러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호감의 법칙> 은,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짦은 시간 내에 정해지는 나에 대한 인상을 긍정적으로 이끌기 위한 행동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CHAPTER 1. 인간관계의 룰을 180° 바꾸는 호감의 심리학
CHAPTER 2. 호감과 비호감은 성격에서 나온다
CHAPTER 3. 이미지가 당신의 모든 것이다
CHAPTER 4. 첫인상을 결정하는 스타일의 힘
CHAPTER 5. 인맥의 지도를 펼쳐라
CHAPTER 6. 친구로 만드는 말, 적으로 돌리는 말
CHAPTER 7.직장에서 쉽게 성공하는 진짜 이유

앞의 세 장에서는, 호감있는 사람과 비호감인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그 호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준다. 그리고 호감형이거나 비호감형 인물이 되는 이유를 성격에서 찾고,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큰 관점에서 제시를 한다. 또 자신이 비호감인 지 호감형인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가 준비되어 있다. 그 밖의 장에서는 옷을 입는 스타일, 듣기 좋은 목소리, 사람과 인연을 쌓는 방법, 화법, 리더쉽등 다양한 영역에서 호감형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책 후반에 제시하는 이런 방법들은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남들은 이 책의 가장 도움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호감'을 짦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신경을 굉장히 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피부병으로 대인관계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대학에 들어왔을 때에는,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 조차 너무나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차근차근 어린아이 마냥 배워왔고,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진 상태이다. 여전히 대화를 할 때 어떤 주제로, 어떻게 참여해야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 게다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게 알 수가 없으니 항상 답답해 하고,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벽을 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도 한단다. 어느날 기회가 닿아 친구한테 나의 첫인상을 물었더니, 표현 단어들이 가관이다. '무섭다' '지적이다' '있어보인다' '다가가기 어렵다'.. 대체로 비호감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나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람과 인연을 트는데 만성적인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 자신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시간내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를 특징 짓는 중요한 몇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1. 나를 부정한다; 나를 항상 남들보다 부족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언제나 모자란 부분만을 집중하여 보게 되고, 그 단점 때문에 괴로워 한다. 이는 때로 열등감으로 이어지며, 나를 발전시키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나, 무드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2.공감을 하지 못한다; 계발계발계발, 자기계발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원하는 바에 대해서 거의 감정적인 몰입을 하지 못한다. 즉 공감대를 형성을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잡담을 하는 것에 대해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진지한 이야기만을 원한다.

3.동경받기 원한다;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항상 느끼는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관심 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존재한다. 

4.실제로 누구보다도 정에 굶주려 있다; 나를 발전시켜야 되고, 존경받아야 하지만, 교감할 시간은 아까운 나 자신은 얼핏 보면 정이 필요없고 독불장군 같은 타입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나의 잠재된 욕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충 추려진 이 네 가지 특징은, 처음에 인정하기 민망하였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정하고 나니, 내가 고쳐야 할 문제점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지 알려준 것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관심과 사랑이다. 즉 호감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호감을 얻는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 중 가장 분명한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 보다 못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은 자신감과 행복한 분위기가 몸에 베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그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된다. 즉 사람들은 온 몸에 긍정 에너지가 돌고 행복한 사람 곁에 있어 같이 행복해지기 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우울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항상 우울한 사람 곁에는 누구나 같이 있기 힘들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참 주위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한 것 같다. 주위에 온갖 부정적 에너지를 뿜어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조언한 대로 나를 더욱 사랑하고, 인정하고, 격려하면,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매사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에게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올 것이고, 좀 더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자 . 그럼 한 번 노력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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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역에서 나와서 선릉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이승기가 산다는 좋은 주상복합건물이 있다.

1층에 자리잡고 있는 Mr. BIG 에 갔다.

 


메뉴를 보고 있는 의진

.

메뉴에는 햄버거, 파스타, 리조또, 스테이크, 감자튀김, 샐러드, 음료 를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모든 햄버거 메뉴는 3가지 사이즈가 있는데, 한사람이 먹을 수 있는 regular 사이즈부터 big 사이즈까지 제공이 된다.

소문에는 big을 시키면 4명이 달려들어도 배부르다고 한다.

 

햄버거 가격은 레귤러 5900원부터 시작한다.

 


 

햄버거는 모양이 흐뜨러지지 않게 이쑤시게로 고정시켜 나온다.

고정된 채로 살살 나이프로 썰어주면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토마토 해물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보통 파스타 전문점에서 보는 10000원대 초반 가격이다.

 

그리고 곁들여 먹은 감자튀김 + 치즈칠리스터핑 은

여러명이서 갔을 때 적당하다 싶은 양이었다.

 

감자튀김은 3000원부터 12000원대까지 있다.

칠리치즈스터핑은 3000원 추가 해야한다.

 

 

우리는 소셜커머스에서 구입한 18000원 자유이용권을 이용하고 6000원 정도 더 지불하여

햄버거 + 파스타 + 감자 + 음료1잔 을 먹을 수 있었다.

 

햄버거 집이라는 이미지로 가기 보다는, 괜찮은 레스토랑을 간다고 생각해도 좋다.

만족스런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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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시대:원제노르웨이의숲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문학선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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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헌책을 싸게 팔길래, 물건들을 쭉 둘러보던 중, 눈에 띄던 책이 있었다. 영미판으로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한국판으로는 '상실의 시대'라고 나왔고, 후에 '노르웨이 숲' 으로 재차 번역 되어 나온 판이 있다.

 

지금의 하루키를 있게한 책으로 워낙 유명하여, 이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감수성만 지나치게 노리는 듯한 일본 소설책들에 질려 손을 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라는 점이 끌려서일까, 며칠동안 손에서 놓지 않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보게 되었다.

 

번역이 참 잘되어 이었기 때문에, 1Q84에서 느낄 수 이었던 하루키의 문장의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섬세한 심리묘사와,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의 어조는 잔잔하고도 무거운 공기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주인공 남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마치 내가 하루키 자신의 청춘이야기를 읽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가을 들게 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알기론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쓴다면 한페이지가 나올정도로 지루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자가의 삶에 반해,  소설의 주인공은 20살인 주제에 참 온갖 상실감과, 인생무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절친의 자살로,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된 그는, 사람들을 저절로 멀리하게 되고, 사랑조차 하기 힘들어한다. 또 생각이 너무 많은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 때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마음보다 생각이 앞서는 그에게 사랑이란 복잡하고 참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소설에는 주인공보다 심하거나 비슷한 사람과, 혹은 정 반대인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잃은 상실감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과 주인공의 만남과 관계의 발전으로부터, 사랑, 죽음, 상실, 이 세가지의 얽히고 얽힌 관계가 점점 구체화 되어 나간다.

 

소설 초반에 작가는 말한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다' .. 이 사실은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점점  확실해진다. 그리고 결국 내가 얻은 결론은, 죽음도 결국 삶인 것 처럼 사랑과 상실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넘처나고, 언론이 활성화 되고, 핸드폰이 일상화되고, 마치 생활은 소통의 넘침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째서인지, 소통이 부족해보이고, 사람들은 더욱더 외로워 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상실감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것에 대한 이유를 사람들간의 사랑이 없어서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숲'의  하루키는 아마도, 다르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상실감에 힘겨워 한다면, 당신 역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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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영성으로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이어령 (열림원,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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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올랑은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놓쳐버린 15분의 줄거리를 찾기 위해 신앙을 가지고 철학에 매달리는지도 모릅니다.

사실20대 때에는 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내가 노아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물속에 빠져 죽는데 혼자 살겠다고 방주를 만드리는 않겠다. 결국엔 노아도 망령들어 죽지 않았나" 라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또 구약에는 하느님이 앞장서서 한 종족 편을 들어 상대편ㅇ르 치는데 이게 어떻게 공의의 종교나며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니체나 카뮈에 매료되어, 허무주의, 실존주의,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거침없이 성서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아예 없었다면 그렇게 핏대를 올리지 않았겠지요. 그런 사람ㅇ ㅣ돌아선 것이지요. 아침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오후엔 알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역시 꿈에서라도 그리지 못한 것들을 겪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자신이 크리스쳔이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말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렘 33;3 )

 

신앙을 가지면서 번뜩이는 감각, 냉철한 비판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묻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거꾸로입니다. 내 작은 머리에서 나온 언어와 판단이 더 큰 영성에 의지한다면 지성이나 두외 순발력이 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지성을 넘어서는 거니까, 지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거니까요. 영성을 얻기 위해 지성을 버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성은 깨달음으로 가는 사다리 입니다. 예수님이 왜 육체로 왔습니까? 육체로 왔다는 것은 육이 지닌 욕망, 잘난척하는 지성, 변덕스러운 감정, 이기적인 본능을 다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오신 거지요. 우리와 똑같은 육의 조건 속에서도 그부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한 것이지요.

나처럼 먹물에 찌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백 퍼센트 신자는 못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 밤에 자다가도 불현듯 회의와 참회를 되풀이 하면서 살징.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거고 있는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 사이의 황흔이 아름답듯이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선 영화관(본문)-

 
우리 아버지도, 우리 교수님도 놀랐다. 나도 놀랐다. 종교를 문화의 일부분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의 대표격인 그가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인으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한 행동 한 마디 하나하나가 일반인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이어령씨가 처음 세례를 받았다고 했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조용히 파문이 일었다.
 
" 그 사람도? "
" 기독교가 뭐길래, 이어령 같은 사람도.."
" 이어령도 늙었구만 "
....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눈길은 곱지 않다. 이어령 같은 사람이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더라도, 기독교에 대한 악감정이 개선되기에는 그동안 종교인들이 행한 부도덕한 행실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이어령의 '변심'은 기독교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참된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고 본다. 나같은 보통사람이 백날 기독교에 대해서 떠들어 봐야 사람들은 나를 보는 안경으로 기독교를 바라본다. 반면에 이어령같이 지식인이고, 사회적으로 명망받는 사람이며, 또 도덕적으로도 지적을 잘 안받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어령에 대한 자신들의 안경을 쓰고 기독교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이 무장 해제된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호기심을 가지고 보며, 진리에 노출될 기회를 얻는다. 이런면에서 그가 저술한 이번 신앙 에세이는 우리나라의 그 어느 종교 서적보다, 힘이 있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클 것이라 생각이 된다.
 
 사람들은 사람이기에 오만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누구도 오만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감과 오만의 경계는 참으로 애매하여 그 정도를 조절하기가 힘에 부친다. 그러기에 겸손이 우리 사회에 미덕으로 자리잡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자신도 마음을 비우게 되어 좋지만, 동시에 상대도 기분이 좋다. 덤으로 겸손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나는 최근에 기독교가 끝없는 비판의 아래에 있는 이유가, 이 겸손의 부재에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우리 주위의 전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을 낮추지 않은채 항상 대상의 선배의 입장에 있다. 당연히 그들이 먼저 시작했기에 신앙의 선배가 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사람들에게 '저처럼' 예수님 믿고 죄로부터 구원받으세요, 하는 순간, 묘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당신이 뭔데? 나보다 나은 사람인가? "   아무리 보아도 자신보다 나은 것을 증명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종교인들은 일반인들에게 오만해 보일 뿐이다.  오만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상태에서 올바른 전도가 될 리는 만무하다. 내 주위에 교회로 잘 끌어들이는 사람들은, 평소 행실이 바르고, 그러면서도 신앙 생활에 철저하고, 동시에 사회생활에도 충실하다. 신기하게도 강한 설득 없이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같이 다니게 된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전도는 저런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어령씨의 이번 책도 참으로 전도를 잘하는 사람들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을 옳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자신을 막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으로 말하기에 부끄럽다라는 태도로, 마음이란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 하나를 던져 파문을 만들듯이 한마디 한마디를 건낸다. 그 겸손한 그의 태도는, 깨끗하고 지적인 이미지와 맞물려서, 독자의 사고틀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메세지로 가공한다. 나의 경우에는 참으로 오랫만에 거부감 없이 작가의 의견이 나에게 완전히 녹아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랫만에 느꼇다는 것은, 오만함이 없이 강력한 메세지를 그만큼 요즘의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책을 읽고 또 엉뚱한 곳으로 생각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정작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태도와, 그 임팩트에 매료되어서, 후기도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책이라는게 읽는 사람마다 각각의 사고틀에 맞게 내용이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니, 딱히 나쁜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단지 책의 내용은, 나에게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엇던 스토리 라인이기 때문에 그것에 중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신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이 열려 있거나, 그 문지방에서 넘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읽으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의 글은 독자와 공감을 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신앙 문제에서 큰 용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ps. (갑자기 생각난 것..)
 나를 비롯한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호기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게 그것은 얄팍한 지성에서 유래한게 대부분이며, 잘난척하려는 욕망에 걸쳐있을 뿐인 경우가 많다. 어떠한 지성인도, 심지어 지성을 탐할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자부하는 이도, 삶의 어느 부분에서 몰려오는 회의를 피해갈 수 없다. 지성은 우리 삶에서 결코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으며, 영성으로 나아가지 않는 지성은 아무리 그 양이 많다고 자부하더라도 해변의 모래알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인이 영성으로 나가아갔다. 당신은 어찌할텐가. 해변의 모래알 하나를 바라볼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의 우주를 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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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신앙과이성사이에서
카테고리 인문 > 인문교양문고 > 지식인마을
지은이 신재식 (김영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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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편견에 가득 차있나보다. 철학을 말하는 사람들의 글은 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체로 항상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온갖 한자어와, 쉬이 끝나지 않는 하나의 문장들은 으레 내 표정을 찡그리게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하고 처음에 안 읽히고 어렵기만한 책이라고 욕하다가, 결국에는 무섭도록 몰입하여 빌린책에 낙서까지 하면서 읽어버렸다.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책에 코를 박고 집에 갈 정도였고, 어두운 밤길에서는 핸드폰  LCD 불빛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여느 철학을 다룬 책처럼 글들은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내가 몰입할 수 밖에 없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이성을 믿는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썩 좋아하지 않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충분히 설명 가능한 부분들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지나가던 길 위의 잡초를 보고 생태계의 복잡한 관계를 생각해 보고, 학원에 급히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울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과, 그 근본 원인을 탐구해본다. 때론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지쳐서,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내 휴식을 달리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어느날 종교라는 것이 내 삶으로 깊숙히 들어왔다.  지금 난 2년동안 빠짐없이 교회에 다니고 있고, 식사 전에 기도를 하고, 아침에 큐티로 하루 일과로 시작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 이성이 따라가지 못하는 성서의 이야기들과 가르침들은 이성과 믿음, 그 사이의 바다같은 괴리감 어느 한 곳에 떠 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버티고 있는 이유는, 애써 그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성과 종교를 설명하는 책들에게 눈을 돌린다. 괴리감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애타게 찾았다. 때로는 이 질긴 어색함을 끝내기 위해, 종교 킬러같은 도킨슨의 저작들을 읽어볼 생각하기도 했고, 그런 생각은 얼마전에도 들던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언제나 책과의 만남은 특별하고, 운명적인다. 도서관 카트에 재배치되어 있던 책들을 지나치다가 딱 한권만 보였으니, 바로 이 책이다. <신앙과 이성사이에서 : 아우구스티누수 &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 신학사에서 그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주춧돌 위에, 이성이라는 기반을 놓고 그 자신들의 사상으로 기둥을 세워 서구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들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활동 시기는 천년이라는 시간차를 두지만, 그 두 사람의 사상은 상류가 하류로 이어지듯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바로 이성으로.

 

 그동안 나의 생각은 기독교의 신앙은 이성으로 대하긴 너무 힘들다고 여겼다. 아니면 이성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여야 그들이 말하는 참된 신앙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극단적인 이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 과학자들이(예들 들면 도킨스) 종교를 혐오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과, 내용을 접하는 순간, 이성과 신앙이 연결되는 접점을 제시받는 그 순간, 나는 무엇인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아마도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그것) 오랫동안 묵은 문제점들을 한번에 씻어내리는 듯한 느낌은 마음속의 한가득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였다. 책에 제시된 해답은 명쾌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사상은 2가지 문장으로 각각 정리된다.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아우구스티누스-
 "믿기 위해 이해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얼핏보면 인과를 바꾸어 놓기만 할 뿐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어보이는 두 말은 실제로는 같은 흐름을 타고 있고, 이성과 신앙에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평화적인 공존)을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짧게 그들의 신학을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본질과 감각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만들어낸 플라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다. 그가 마니교를 믿던 시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성서의 내용들을 신플라톤주의적인 해석을 기반으로한 강해를 듣고는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독자적인 기독교 신학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에 플라톤 주의는 여전히 유용하게 쓰였다. 그러나 완전히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고, 신플라톤주의를 기독교에 맞추어 비판적인 수용을 한 것이고, 아우구스티누는 플라톤주의로 신의 세계 창조와, 존재를 설명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 출현한 회의론자들은 진리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가, 라며 반문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만일 내가 속고 있다면, 나는 존재한다 ( si fallor, sum ) 이라는 유명한 말로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고, 하나님의 존재, 즉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였다. 또 그는 이 진리는 감각들로 얻는 일반적인 지식들과는 달리 고차원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으로 획득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것이 바로 '조명설' 이고, 인간의 이성에 하나님이 조명을 비추듯 도움을 주어야 진리에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명설에 입각하여, 영원한 진리를 탐닉했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신앙이 전제해야 그 진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해하기위해 믿는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이다.

 

 그에 반해 천년후의 인물인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과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은 현실 세계에서 발견되는 형태라고 하며, 감각의 우위를 역설하였기 때문에, 이는 앞선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고 종교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금지되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의 추구하는 트렌드와 맞물려서 전 지역을 휩쓸었고, 신학 아래 놓여있던 자연철학이 신학을 넘어 큰 지성의 흐름으로 발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학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과거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에서는, 이성의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감각을 인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입각한 아퀴나스는 이성의 자율적인 부분을 인정하였다. 동시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하듯이,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계시에 대해서는 조명설을 지지하였다. 그는 신학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연신학과, 믿음을 전제로한 계시신학으로부터 구분하였고,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성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해하는 자연철학을 영역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이성이 억압받던 중세시대(dark age) 로부터 근대적인 사상이 출현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유럽에서 자연과학이 급격히 발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첨예하게 대립하던 이성과 신앙은 다시 한번 평화롭게 공존하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출현하기 전까지.)

 

 


 나의 꿈은 과학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종교적인 생활과 과학자로서의 생활에서 유발되는 끝없는 내면의 싸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에 꽤나 우울해 있었고, 자신이 없기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너무나도 큰 선물이었다. 내가 앞으로 가져야 할 학문적 태도와, 신앙적 태도가 첨예하게 대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의 커다란 부담을 덜어내게 되었다. 그럼 왜 나는 종교를 포기하면 되는 것을 왜 굳이 부담을 가지고 사는 것인가?

 

 사람의 행복은 물질적 풍족이나, 지적인 충만함, 혹은 사회적 지위로서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고 난 믿는다. 멀지 않은 사람들의 예를 보면 그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달리고 넘어지면서, 행복의 실마리를 잡기위해 애쓴다. 하지만 매번 그 실패에 좌절하곤 한다. 그리고 행복은 점점 멀게만 느껴지고, 사람들은 점점 단순한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면서 이런 저런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참 된) 종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는 온갖 욕을 먹고 살지만 (욕먹을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헛된 욕심을 쫓아서 사는 이들보다 훨씬 행복해 보이기에, 나는 신앙심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애쓰고 있다.

 

 

아마도 이 책과의 만남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계시" 일지도 모른다.

 

 

 

ps.
 책은  크게 4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내용으로 초대하는 1장, 두 큰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연관시키는 2장, (두번째 장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과, 아퀴나스의 생각을 각각 나누어 설명한다. 각각의 인물의 학문적 성장의 배경을 설명하고, 시대적 상황을 조명한 다음, 본격적으로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그리고 데카르트의 가상 토크가 있는 3장, 그리고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슈들을 책의 내용에 입각해 정리해 놓은 4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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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독서세상을바꾼위험하고위대한생각들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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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자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6권의 책들 중 한권인 이 책.

생일 전 주 부터 며칠에 한권씩 주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받는 당일에는 기분이 너무 않좋아서, 책에 대해서 투덜거리고 말았다. 그 때 기분이 않좋다고는 안하고, 괜한 핑계를 대었는데, 그 내용이 웬지 책이 너무 어두울 것 같아서 였다는 것이다. 사실 유시민에 대하여 스처 지나가듯이 뉴스로 접하였지, 그 외에 내가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 때문에 나의 편견으로 유시민의 책은 그저 '어둡고' '전투적인'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밝은 느낌의 유쾌한 글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고나니, 수많은 다독으로 얻는 지성의 양분을, 단 한권에 의해 액기스를 섭취한 느낌을 받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 글로서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대단한 능력을 유신민이란 사람이 가졌음에 매우 놀라웠다. 

 

작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세력의 대표 지식인이다.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며, 야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 지목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보수 세력이 막강한 우리나라에서, 쓴소리를 멈추지 않고 소신있는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로 인해 그는 우리나라의 우향우 언론들에 의해서 쉬지 않고 짓밟히곤 한다. 물질이 우선되고, 부 자체가 목적이 되어, 서로 무한 경쟁에 몰아 넣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유시민처럼 가치판단의 전선에서 프런티어의 역할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예전처럼 아군들의 힘도 미약하기만 한 때에.. 그는 왜 이런 삶을 택하였을까?

 

인생의 방향은 청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정해진다고 믿는다. 청춘을 보내며 삶의 가치에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앞으로의 인생은 타인의 가치에 휘둘리며 살게 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을 따르고 실천하는 유시민에게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이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은 청춘의 독서였다. 길로 비유되는 인생에서 그의 책들은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길옆 깊은 도랑으로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었다.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진보적 가치가 힘을 잃어갔다. 그 세력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가득하였기에 ,유시민은 다시 한번 비틀거릴 수 밖에 없었고, 그에게 등대가 되었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것들은 작가에게 어김없는 감동과 힘을 주었고, 그는 이 감동과 힘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유시민은 '죄와 벌' 로부터, 선을 위한 악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찰을 하고, '전환시대의 논리' 로부터 지식인으로서의 태도를 가르침 받았다. '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뜨거운 가슴을 느꼈고, 멜서스의 '인구론' 을 읽고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꼈다. 푸시킨의 책을 읽으면서, 밝은 사회를 열망을 꿈꾸었고, '맹자'에게 참된 보수의 의미를 배웠다. '광장'을 읽고, 현재의 상황에 큰 회의를 느끼고, '사기'를 통해 정치를 알았다. 그 외에도 '종의 기원' ,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등등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유시민은 자신의 가치사슬 탑 골조를 형성하였다.

 

나는 이 책들 중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읽어 넘긴 다음, 한참 동안 허공 어딘가에 초점도 맞추지 못한 채, 큰 감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도 이리도 감동을 받는다면, 원작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은 과연 어떠할까? 꺼져있는 등대에 환한 빛을 달아 어둠속에서 좌표 하나를 얻을 때마다 마음속의 벅참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벌써부터 두근거리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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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뇌의비밀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 뇌과학
지은이 안드레아 록 (지식의숲,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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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할때 다시 꾸는 꿈이 있다. 대단히 어지러운 이미지의 연속물인데, 깨어서 그 꿈을 기억하고자면 여간 힘들 수 가 없다. 다만 매우 격한 정서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꿈을 꾸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쉽게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꿈은 미래를 말해주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혹은 프로이트가 말하듯 일상에서 표출되지 못한 욕망의 형태일 것이라 간주한다.

 

하지만 이 책은 철저히 과학적인 실험과, 추론으로 꿈의 비밀을 파해치고 있다.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던 것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속사포처럼 던저주는 이 책은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까지 우리 뇌에 대한 경외감을 일으킨다. 워낙 주옥같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펜을 들고 즉각즉각 중요한 것들을 메모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또 이번에 단편적인 지식 조각들을 메모로 남긴 일은 앞으로 내 독서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가 된다. 솔직한 바람으로는 늙어서도 수십권의 노트를 만들게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꿈 연구의 시작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연구까지, 연대기적 구성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가장 처음에는 꿈에대한 인간의 첫 궁금증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REM 수면상태가 꿈을 주로 꾸는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사건을 계기로 촉발되는 꿈연구의 전성기를 여러장에 걸처서 설명한다. 그 전성기에 이루어진 다양한 발견과 흥미로운 실험들은 과학자들의 엉뚱한 호기심과, 예리한 관찰력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서는 꿈연구의 학문적 유용성을 설파하고 있는데, 미국역시 실용적인 학문에 대한 지원만 아끼지 않는 현실에서 피해가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하니 안타까웠다. 작가는 급격히 줄어드는 꿈연구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던것 같다.

 

가장 흥미로웠던 몇가지 내용들을 간단히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꿈의 기억은 REM 수면기에 깨우면 잘 할 수 있다는 것.

- non-REM 시기에도 꿈은 꿀 수 있다는 것.

- 꿈을 꿀 수 있는 시기는 보통 5살 이후인데, 그 이유는 시공간지각능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

- 꿈의 정서는 편도체 관할의 강렬한 정서 : 분노, 공포 가 주로 나타난다는 것.

- 자각몽은 훈련 가능하다는 것.

- 꿈은 각성상태에서 접한 뇌의 자극을 재정리 하는 과정이라는 것.

- 잠을 자면 기억의 효율이 좋아진다는 것.

- 우울증 치료는 약물로도 가능하지만, 수면치료의 길도 열려있다는 것.

꿈꾸는뇌의비밀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 뇌과학
지은이 안드레아 록 (지식의숲,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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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생물학카페
카테고리 과학 > 청소년 교양과학
지은이 이은희 (궁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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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생물학적 지식을 엮은 그녀의 글을 네이버 캐스트에서 종종 보곤 했다. 젊은 나이에,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서 어려운 지식도 쉽게 풀어 설명하려는 작가의 결정에 감동하여 나는 이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수많은 주제로 짤막한 글들이 이어지는 이책은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였다.

 

첫째로, 신화와 과학을 매끄럽게 연결하는데 실패했다. 그냥 한쪽엔 신화 한편, 다른 쪽엔 과학잡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글들을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둘째로,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문체로 내용을 풀어가지만 정작 그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생물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자들이나, 어른들이라는 것이다. 고유명사 하나를 사용할 때 남들도 이 단어를 알 것이라는 전제는 위험하다. 특히나 대상층을 넓게 겨냥하고 쓴 교양과학 서적에서, 이런 전제는 더욱더 그러한데, 이 책은 어려운 단어를 이쁜 문체와 아무렇지않게 섞어 쓴 책, 그 이하 이상도 아니었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일반인들이 보면 친절한듯 한데, 당최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글이 되는 것이다.

 

셋째,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다. 블로그 글 답게 자기 주장이 들어있는 것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너무나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 예로, 그녀는 여자 과학자로서 진화론적인 생각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모든 사물을 대하기 때문인지, 성역할, 낙태나, 동성애, 그리고 생명에 대한 정의 등등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거기에 약간의 감정이 실린듯한 어조의 글까지..

 

이같은 이유로, 책이 너무나 얇고 폰트도 크고, 그림도 많아서 단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으나, 매우 읽기 힘들고 오래걸린 책이었다. 젊은 과학자로서 지식의 대중화에 힘쓰는 그녀가 멋지기도 하나, 그녀의 첫작품인 이 책은 아직 성장중인 과학자로서 그녀를 보여주듯, 마치 성장기의 저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책들은 읽기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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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클락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 교양생물 > 인체이야기
지은이 러셀 포스터 (황금부엉이,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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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로 책을 고르다 보면은, 간혹 소화하기 힘든 책들을 접할 때가 있다. 아무리 책장을 다시 뒤로 넘겨, 혹 놓친 것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많더라도, 어떻게든 읽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선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온 몸이 피곤하게 된다. 경험상 주로 교양서적의 탈을 쓴 전문 서적들이나, 전문 번역인이 아닌 분들이 이력서에 한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손을 댄 책들이 주로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예를들면, 수능에도 자주 등장하시는 '이기적 유전자' 는 청소년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도 '자주' 추천이 되곤 하지만, 중학생 수준의 직역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번역투의 거친 문장은 심오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너무나 어렵게 만들어버린 책이다. '이기적유전자'의 이기적인 전문성과, 이기적인 어느 교수의 저급한 번역 때문에 나는 큰 후유증을 앓게 되었고, 그 후론 비슷한 책들을 꺼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책을 고르다가,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생물학 분야이기 때문인지,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이오클락' 이라는 제목에 쏠리게 되었다. (같이 빌린 책은 대놓고 '생물학 카페'이다.) 한쿡말로 생체시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개념으로 신문과, 티비에서 건강 관련 이야기에 자주 접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배고픔과 수면충동 같은 것들로 생체시계라는 것이 상당히 사람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껏해봐야 약 200년 전에 그 실체가 궁금증을 자아내었고, 한참후 DNA 구조가 발견되어 분자생물학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면서 덩달아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서두에서 작가가 언급하기를, 워낙 역사가 짧은 연구인 만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그만큼 수정되어야 할 부분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의 첨단 학문인 분자생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쉽게 쓰려해도 어려운 용어들을 피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의 목적은, 일반인들에게 생체 시계에 대한 개괄적인 개념을 전달하는 것과, 생체시계의 연구적 가치를 전파하는데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분자생물학자와 미래학자가 공동 저자인 만큼 각각의 전문성을 살려 저술을 한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과학자는 "이러이러한 궁금증이 이러이러한 연구들로 이어졌고, 또 이러이러한 발견들이 나왔고 그것들로 이러이러한 결론을 도출하여 생체시계는 이러이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라고 하는 반면,

미래학자는 "이러이러한 생쳬시계에 대한 연구는, 이러이러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으며, 앞으로 우리는 생체시계에 대한 이러이러한 점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라고 말한다.

이런 점은 책의 유용성을 부각시킨다. 생체시계에 대한 전문서적으로 혹은 연구에 대한 입문서로 학생들에게 적합하고,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생체시계와 관련된 일을 인지하고, 관심을 기울이게 하기 때문에, 결국 어느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시계로부터 내용을 풀어나간다. 진동하는 세슘원자로부터, 혹은 진자로부터 발촉되는 일정한 리듬들의 표현형인 시계... 포인트는 시계의 '리듬'이다. 리듬이 있어야 흘러가는 시간을 조각낼 수 있고, 그 조각들로 시간의 길이를 잴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이 땅의 생명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생물 행동학적 실험 및 연구 활동으로 증명을 하여 받아드렸다. 벌, 새 등 여러 동물들로 행해진 실험들은, 자세한 과정과 실험 결과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추론을 도출해 내었는지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자세함은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생물학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운 간접 체험이 될 만 하엿다.

시계가 우리 몸속에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이제 본격적인 체내 시계에 대한 탐험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의 새로운 국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분자생물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기본적으로 생체 리듬이라는 것은 선천적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가기 때문에, 유전적인 분야로 파고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독자와 책의 거리감을 늘리고 마는 일이 되었다. 실험적인 내용은 건너 띄고 실험에 대한 의의를 설명하는 파트만 읽어주어도, 내용에 전혀 무리가 없으나, 이 선별적 읽기 자체가 매우 어렵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체리듬은 빛과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눈과 뇌가 생체시계가 존재하는 곳으로 의심되었고, 실제로 눈과 뇌 사이의 SCN 이라는 신경 교차 부위가, 동물들의 생체리듬 발생 부위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런 생체 리듬은 빛에 의하여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밤을 샐때 경험할 수 있는 생활패턴의 지연을 설명해 준다. SCN의 발견은, SCN에 입력된 리듬이 어떤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가, 또는 조절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그래서 실제로 생체리듬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유전자가 발현되고 조절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밝혀내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메커니즘의 발견은, 개별적인 동물들의 생체 리듬에 대한 연구로 적용이 되었다. 예를 들어 계절에 따른 동물들의 행동 변화, 철새들의 시간 인지, 등등 여러 가지 동물의 시간적 행동에 대하여 분자생물학적으로 풀이를 한다.

 

여기까지가 과학자의 "생체시계는 이렇다" 라는 내용이다. 이제 미래학자가 상대적으로 짧은 페이지에 걸쳐서, 우리의 체내시계에 대해 더욱 친근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생체리듬 입장에서 본, 인간의 진화, 교대근무의 폐해. 의약적 처방에 적용될 수 있는 방안, 그리고 앞으로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가 인간에게 가저올 미래 등등 실용적이고도, 심각하게 현대 문명을 돌아보게끔 하는 철학적 주제들이 제시가 된다.

 

개인적으로 벤자민프랭클린의 편견석인 명언 '일찍자고 일찍일어나는 것은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하게 한다' 는 것을 헛소리로 증명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다. 많은 현대인들은 이 명언때문에, 자신의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생체리듬을 어기고 살고 있으며, 심지어 loser 취급까지 받고 살고 있다. 올빼미형 인간들에게 매우 희소식일 수 없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다시 돌아와서 책에 대해 마무리하자면 , 이 책은 교양적으로도 훌륭하고, 전문적인 지식 함유면에서도 출중하다.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책일 수도 있으나, 모든 책에서 독자와 작가가 소통을 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독서라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능동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은 독자이다. 독자가 다양한 작가들의 생각과 말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러한 책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과 함께 자신의 배꼽시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어떤가 ?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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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책읽기다독술이답이다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 독서 > 독서에세이
지은이 마쓰오카 세이고 (추수밭,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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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책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잘 읽을 수 있을까 하여 방법론 적인 것을 탐색하기 위해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빌렸으나,기대한 것과는 달리, 독서왕의 책에 대한 철학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목을 참 오해받기 쉽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쓰오카 세이고는 일본에서 자타공인의 독서광이다.

하루에 한권에 관한 독후감을 1000개를 목표로 웹에 올리는 프로젝트 <센야센야쓰> 를 진행하여, 지금은 1300여 편에 대한 독후감을 올리고 있고, 과학과 인문을 가로질러 연결하는 잡지 <류>의 창간, 그리고 편집공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책에 관한 거의 모든 활동을 하고 있는 독서가이자 연구자이고, 편집가이며, 저술가이다.

 

그가 소유하는 책은 천단위를 넘어 만단위로 세야 한다. 66년의 인생동안 읽은 책의 양은 그 수가 어마어마 하여, 웬만한 아카이브 정도 설립해도 될 정도이다. 실제로 그는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정보로 책과 책의 관계를 토대로 네트워크를 구축한 <북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세이고 씨는 책이 어려운 이들에게 말한다. "책은 음식입니다." 그는 책을 너무나 신성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책을 가까이 하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한다. 독서라는 것은 다분히 인간이 매끼 식사를 챙겨 먹듯이 하는 것이라 결코 어려워 해서는 안되고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는 독서방법을 제시하는데 음식을 먹는 것으로 비유를 많이 한다. 가장 인상 깊은 비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식재료나 요리의 종류를 보고 단지 그 수에 놀라 먹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책을 접한다는 것은 사실은 상당히 육체적인 문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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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서에 있어서,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우리는writter와 reader 이렇게 제공자와 제공 받는 사람으로만 독서 관계를 정의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가 생각하는 독서란 완전히 다르고 복잡해서 이해하기조차 힘들다.

저자와 독자, 각각의 영역에서 둘이 겹치는 영역이 생기는데 이게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쓸 때, '글쓰기 모델'을 제시하고 독자는 '읽기 모델'을 통하여 책의 컨텐츠를 자신의 특성대로 이해한다. 이 과정에서 책을 통하여 두 모델이 상호 교환됨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작가는 '편집 모델의 상호작용' 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 용어는 책 내용 전반적으로 자주 쓰이면서, 작가의 책에 대한 편집공학적 이해를 설명하곤 한다,.

 

편집공학 이란 단어조차 생소하고, '편집' 을 주로 쓰는 영역은 영화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책과 편집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하여 읽으니 얼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던 것 같다. 내 식대로 설명하면 오래 기억에 남을까? .. 한번 정리해 보려한다. 나중에 내가 지금 책을 읽은 후에 쓴 리뷰를 다시 읽고, 책을 읽었을 때 어떤 점이 잘못되고 ,어떤점에서 오해를 했는지 알 수 있겠지.

 

내 독서생활에서 예를 찾자면, 이런게 있다. 철학 책을 읽을땐 읽어도 글자라는 재미없고 난해한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식물에 대한 책을 볼 때면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되고, 그 독서 속도 또한 빨라지게 된다. 철학책의 경우 난해한 이유는 으로 제시한 생각의 틀과, 나만의 생각의 틀이 상이한 점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세모 라는 도형을 만드는 틀로 작가가 세모를 책에 담았다고 하면, 나는 그 세모를 나의 틀에 맞추어 끼운다음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모는 원이 되기도 하고, 네모가 되기도 하고 별이 되기도 한다. 왜냐 하면 나의 틀은 작가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세모를 받아드리려면 그 방법에 있어서 어떤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그 변형은 해로울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자기의 틀로 인해 새롭게 재생된 것은 내 몸에 잘 맞기 마련이다.

 

변형 과정이 얼마나 고되냐에 따라서 책의 이해도가 달라지는 것이 라면,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 틀을 최대한 많이 갖는 것이다. 이 틀은 내 삶, 내 경험, 많은 책을 통한 수많은 조물의 제시를 통해 갖추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어느 정도 지나면,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도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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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미디어 패키지 상품이다. 지식, 커버 디자인, 제목, 소제목, 차례 등 든 것이 나의 읽기 모델들과 얼키고 설켜서, 나만의 컨텐츠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이 때 책의 내용은 나의 삶, 그동안 읽은 책들, 경험, 지식 등과 네트워크를 이루는데 이 점에서 21세기 책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점을 발견한다.

 

킨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리더, 블로그, 위키피디아, 등등 it기술을 총한 많은 책 관련 서비스/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글에선 단어 하나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단말기에서 한페이지 씩 책을 읽을 수 있다. 얼핏 보면 너무나도 편리하고,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는 면에서 훌륭한 발전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바로 기존 첵에 있던,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로 검색된 지식은 단편적인 조각들이다. 그것들을 우리는 컴퓨터에 저장을 하지만, 그 정보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오진 않는다. 책을 읽는 과정에 있는 저자와 독자의 편집모델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의 종말을 예언하지만, 수천년 계속된 '펼침' 컨텐츠는 다른 디지털 기기가 아직 흉내 낼 수 없는 소통구조를 그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이 때가 책의 가치가 다시 빛날 시기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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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공정함만 쫓아다니고, 경제는 효율성만 쫓아다닐 때, 문화는 그 가치를 모순으로 끌어 안아야 한다."  -다니얼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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