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8살을 마무리해가는 대학원생이다.
사람들은 내가 연구에 밤낮으로 참 고생한다고 위로를 많이 해준다.
버스비와 식비를 제하면 인건비에서 남는 것은 없고, 부모님의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학위 기간 중 운동과 문화생활과의 단절은 삶의 질을 끊임없이 끌어내리는 듯 하다.
UST 에서 학위를 하면 그나마 더 많은 인건비를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간판은 무시할 수 없기에 박봉을 택한다.
그런데 이걸 왜 하냐고? 누구는 학문에 대한 열정 때문에 하거나, 어떤이는 직업적인 요구조건을 맞추기 위해 선택을 한다. 나의 경우는 학문적 열정 조금에 교수가 되고 말겠다는 왠지모를 강한 동기 때문이다. 다행히 계획한 것들은 착실히 이루어 가고 있는 중이다.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당장은 유학을 가기 위한 단기 목표를 위해 석사 학위를 준비중이다. 유학을 나가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무척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불쌍히 여긴다. 어쩔때는 바보같이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론 그들은 나를 부러워 해야 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내 생활은 빈곤하다. 그러나 돈이 부족해도 이 길을 걷는다. 왜? 그럴 여유가 되니깐.

이 길은 예술가의 길처럼 그 목적이 순수함에 가깝다. 경제적인 계산이 끼어드는 순간 버티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순수한 사람들이 남게 된다.

나는 빈곤하지만 돈의 사슬로부터 내 운명은 자유롭다. 이는 전적으로 내 부모님의 덕이다. 그 분들의 내 순수한 꿈에 대한 지지와 지원 능력 없이는 내 꿈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당장 옷을 못사고 레스토랑을 못가고 차가 없더라도 그들이 주변에 치어가며 미생의 삶을 살 동안 나는 나만의 판 위에서 나를 위한 삶을 산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보내온 시간의 등가 교환일 뿐 그들은 나에게 뒤쳐졌다. 그들 각자의 판은 아직 시작도 안했지 않은가. 나는 그들이 뒤를 돌아볼 때 나만의 멋진 판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제 상황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가?


난 당신들이 부러워 해야 하는 그런 금수저인 사람이다. 불쌍하게 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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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단상. 카테고리 없음 2015. 12. 15. 03:14

나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술을 즐기지 않았다.

술 외에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찾을 곳은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술은 좋은 일이 있을 대 먹는 것이지, 나쁠 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그래서 과거 술을 많이 먹었던 때는 보통 너무 즐거워서 흥을 이기지 못했던 경우였다.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친구를 만나서 추억을 쌓지도 않고, 책을 읽으며 지적 충만도 못느끼고, 그저 항상 쫒기는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뚜렷한 목적의식 밖에 없다. 졸업해야 한다는 목적.

누구보다도 목적은 뚜렷했기에, 사수에게 괴롭힘 당할때도, 1년이 지나서야 연구에 문제가 생겨 내 그동안의 결과들이 뒤엎어지더라도. 나는 버틸 수 있었다. 하긴 누군들 이정도 시련은 겪지 않고 살까. 그저 실험실 사람들이 내가 제일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니깐 해보는 말이다.

 

밤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고 힘든 일이 많아지면서, 맥주를 매일 한 캔 씩 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맥주의 탄산이 목을 긁고 내려가는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중독성은 알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에 있지 않았나 싶다. 무언가 시원하게 긁어내리는 느낌. 무언가 내 안에 막혀있던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일은 풀리지 않고, 과거의 행복했던 나의 생활은 기억 저 편에 있기에 모든 것이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답답함에 마시는 술은 무엇일까. 마른 사막에서 마시는 오아시스 물을 마시는 느낌. 아니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행위. 결국 이 때의 술은 나에게 해갈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망각의 의미의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되면 많은 생각들을 가지 쳐낼 수 있다. 나는 본래 생각이 많다. 수 가지의 생각들이 동시에 뻗어나가서 산만하다고 불릴 수도 있을 정도로 여러가지를 동시에 판단한다. 이 판단은 빠를 경우 직관적인 판단으로 보일 수 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내 짧은 인생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도출된 논리적인 판단이다. 다만 일을 하는데는 굉장히 비효율 적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특성상 너무나 많은 것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나를 못이기고 내 생각은 다른 것에 가지를 치고 있다. 집중을 하면 할 수록, 하찮은 것들을 동시에 생각하고 있다. 내 집중력은 복잡한 인과가 얽혀있을 수록 빛이나는 것이 여기에 근거한다.

 

레포트를 쓸 때 나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되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없다. 한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능력이 떨어져서 한가지 밖에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보다 술을 마신 후 월등한 능률로 레포트 작성을 완료한다.

 

요즘은 망각을 위해 술을 많이 마신다. 올해는 어느때보다도 집중을 하기 어려운 한 해였다. 우습게도 연인과의 관계 때문이다. 관계가 위기에 있게 되면서 거의 모든 시간 내 사유의 한쪽 가지는 언제나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일을 할 때 집중을 해야 하지만, 언제나 떠나가지 않는 관계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나는 아직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아서, 사랑 따위에 내가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단 칼에 해소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 문제를 1년 가까이 끌고 있다니. 누군가가 욕을 해주거나,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라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쨋든 나는 이렇게 해소할 수 없는 생각들에 괴롭힘 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되면 내가 하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되고, 잠시나마 그녀를 잊을 수 있다. 그리고 기분도 나아진다.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고 싶다. 그런데,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술을 마시면 내 눈앞의 시야가 더욱 분명해지는 이 좋은 느낌을 놓치기 싫은 것인지, 밤마다 맥주 한 캔 씩을 먹고 있다.

 

지금도 맥주 한 캔을 하며, 불필요한 필터링이 많지 않는 이 순간, 나는 글을 쓴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내 생각을 가감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분명한 생각을 손으로 배설을 하고 있다.

 

나에게 술은 기쁨의 술에서 해갈의 술을 거쳐 지금은 망각의 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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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xxx의 의견에 조심스럽게 반론을 남깁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에 전반적인 도전 정신 실종이란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특정 세대의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시키기 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도전에 있어서 희망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희망은 미래에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노력의 결과가 공정하게 나누어지는 환경에서 싹이 틉니다.
현재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보다 엄청난 풍족함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꼭 진취적인 마인드로 이어질 순 없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신호보다는 위기의 신호만 받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성장의 상승곡선 위에 있던 세대와 ,정체되거나 하향곡선 위에 있던 세대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반적인 애티튜드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노력에 대한 사회의 공정한 평가의문제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중요한 정치권 어젠다로 부상한 것만 보아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분명 젊은이들 중에는 도전정신이 투철하고 톡톡 튀는 리더형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범인들이 주가 되는 곳이기에, 그런 특별한 모델을 다수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흐름을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옳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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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카테고리 없음 2015. 10. 19. 02:43

슬픈거 말고 달닳했으면 좋겠다. 좋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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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없음 2015. 8. 17. 22:15

이 지랄도 그만둘까.
시간 아까워. 감정소모, 정신력 소모, 체력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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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카테고리 없음 2015. 6. 27. 20:58

애초에 미련 없던 삶인데.
빨리 죽는게 편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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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오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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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카테고리 없음 2015. 5. 2. 04:41

회복은 어려울거야 많이.
맘이 아프다.
안녕 아름다웠던 과거야.
더 아름다운 미래를 그릴 수 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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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보살이 되려고 할까.

이건 보살 컴플렉스인가.

변태적인 자기만족인가.

 

이번 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관용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

 

하지만 난관은, 아픈 기억을 굳이 안고 가는 것에 대한 리스크이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가장 큰 문제이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더욱 멋진 사람으로 인정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게 보살이 되려는 목적이었을까.?

 

더 성숙하고 달라진 나에게 맞는 세계를 품을 수 있는데,

애써 외면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나는 달라졌는데 왜 과거에 머무르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일이다.

미련?

 

이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지 아닌지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나는 오로지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에 냉철해질 것이다.

과거를 놓지 못해서, 과거를 붙잡으려고 애쓰지 않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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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카테고리 없음 2015. 4. 25. 02:36

정리가 안될 것 같던 복잡한 생각들 잡읍이 없어지면서 또렷해지며 우선순위에 따라 정렬된다.
이 일의 끝은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된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나는 좀 더 안정될 수 있다.
아쉬움도 미련도 더는 느끼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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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카테고리 없음 2015. 4. 23. 23:32

개같다 진짜.
사람도 일도 아무것도 안된다.
다 그만두고파.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일로 왜 쓸데없이 공기 낭비하면서 살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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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랩가( Lab, 혹은 Rap)

 

우리 집의 버릇없는 꼬마 아가씨,

작디 작고 귀엽지만, 말썽꾸러기

고집스런 그 버릇은 언제 바꿀래.

인내심이 폭발하는 열차 막차 타임

바뀌지 않는다면, 굶겨 혼내리.

 

작품 설명

나는 구지가의 형식과 내용을 패러디 해 보았다. 구지가에 대한 주류 해석은, 거북이를 주술적 대상을 삼고, 부족의 우두머리가 나오기를 바라는 노래라는 것이다. 이 노래는 주술의 대상인 거북이를 부르고, 요구를 하고,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때리겠다는 협박을 한다.

그래서 나도 시를 쓰되, 주술적인 대상에게 요구를 협박조로 하는 내용을 담기로 하였다. 거기에 하나를 더 얹어서 시를 쓰면서, 끝 음절을 맞추어서 운율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이 시에서 실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실험실에 키우고 있는 세포에 관한 이야기 이다. 나는 이 세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형질을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해서 실험적 방법을 통해서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형질 변환이 잘 되지 않아 무척 답답한 상황에 있다. 세포와 관련된 공부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세포를 귀엽지만 말을 잘 안 듣는 꼬마 아가씨로 만들었다. 밉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형질이 잘 바뀌지 않는 세포의 특성을 버릇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굶겨 혼낸다는 것은, 계속 형질이 변하지 않으면 그 세포를 배양하는 것을 멈추고 영양분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겠다는 것이다.

중간에 열차 막차 타임은 이 세포의 형질을 바꾸는 실험을 하다가 종종 끝나게 되는 시간을 뜻한다. ‘타임은 운율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적절한 한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외국어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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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2학기 신경생물학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주제 :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혼과 육체를 구분할 수 있는가? 어디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불가피하게 첨가되었습니다.

 

나는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 그릇이고, 이 두 개체는 인간의 어느 특정 지점에서 교차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이원론의 개념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인간 영혼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지배당하는 육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육체는 썩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육체가 사라지더라도 그 이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 영혼의 실체는 인간이 가지는 마음 혹은 생각과 다르고, 이 것들을 촉발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원인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영혼들은 기본적으로 기쁜 마음, 선한 생각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영혼은 인간의 육체에 정착하는 순간부터, 그 둘은 깊은 상호작용을 시작한다. 영혼은 육체를 뜻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며, 동시에 육체의 상태가 영혼의 육체에 대한 통제력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육체는 분명 진화에 의해 도달한 형태이다. 진화를 통해 도달한 우리의 육체는 생존과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지속시키기 위한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배고프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발버둥 치고, 번식을 위해 성욕을 발산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동물적인 본능들은 인간의 육체가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들을 구분시키는 것은 이러한 본능들을 인지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육체를 통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영혼이다.

 

하지만 이 통제는 종종 한계를 보이곤 한다. 그 한계는 육체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의 몸은 병을 앓거나, 무척 피로하거나, 혹은 유전적인 문제에 의해서 영혼이 바라는 바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즉 우울하거나 분한 감정, 혹은 선() 입각하지 않은 행동들을 유발한다. (내가 여기서 말 하는 선은 기독교 신앙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 반대로 건강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가진 육체는 영혼의 힘이 강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아토피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많이 무너진 상태로 오랫동안 지냈는데, 그 때문에 언제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꾸준한 운동을 통해 몸의 건강을 되찾았고, 동시에 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로부터 멀리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심한 스트레스나 우울함이 느껴지면 쉬거나, 운동을 하면서 몸의 활력을 찾는 것으로 극복하고 있다.

 

나의 생각에 근거로 삼는 것은 또 한가지가 더 있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심장의 기억과 감정 및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었다. 심장박동을 조절해주는 태국마사지를 통해서 감정을 다루는 모습과, 심장이식을 통해서 죽은 기증자의 기억과 성향을 옮겨 받은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즉 심장은 혈액을 전신에 공급해주는 것 외에도, 감정과, 기억,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다시 짧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 우리의 영혼은 기쁨과 선이라는 추구하는 방향이 있고, 영혼은 우리의 육체를 이용하여 그 뜻을 피려 한다. 하지만 진화를 통해 발달한 육체는 그 상태와 환경에 따라서 영혼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이다. 그러나 아직 정리하기 힘든 질문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첫 번째로 영혼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영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창조되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로 영혼이 어떻게 육체에 정착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제시했지만, 그에 대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고, 나 역시 어떠한 것도 주장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영혼이라는 것은 우리에 몸 속 어딘가에 자리한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몸 전체를 이불처럼 감싼 이미지로 생각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영혼은 육체의 죽음의 어떤 단계에서 육체를 떠나가느냐에 대한 질문이 있다.

 

이들 모든 질문들이 해결되길 바라진 않는다. 죽음으로서 영혼과 관련된 모든 질문들은 모두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과학이 영혼을 밝혀낸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유물론에 종속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가치를 낮추어 삶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영혼의 영역은 과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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