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단상. 카테고리 없음 2015. 12. 15. 03:14

나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술을 즐기지 않았다.

술 외에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찾을 곳은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술은 좋은 일이 있을 대 먹는 것이지, 나쁠 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그래서 과거 술을 많이 먹었던 때는 보통 너무 즐거워서 흥을 이기지 못했던 경우였다.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친구를 만나서 추억을 쌓지도 않고, 책을 읽으며 지적 충만도 못느끼고, 그저 항상 쫒기는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뚜렷한 목적의식 밖에 없다. 졸업해야 한다는 목적.

누구보다도 목적은 뚜렷했기에, 사수에게 괴롭힘 당할때도, 1년이 지나서야 연구에 문제가 생겨 내 그동안의 결과들이 뒤엎어지더라도. 나는 버틸 수 있었다. 하긴 누군들 이정도 시련은 겪지 않고 살까. 그저 실험실 사람들이 내가 제일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니깐 해보는 말이다.

 

밤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고 힘든 일이 많아지면서, 맥주를 매일 한 캔 씩 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맥주의 탄산이 목을 긁고 내려가는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중독성은 알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에 있지 않았나 싶다. 무언가 시원하게 긁어내리는 느낌. 무언가 내 안에 막혀있던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일은 풀리지 않고, 과거의 행복했던 나의 생활은 기억 저 편에 있기에 모든 것이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답답함에 마시는 술은 무엇일까. 마른 사막에서 마시는 오아시스 물을 마시는 느낌. 아니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행위. 결국 이 때의 술은 나에게 해갈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망각의 의미의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되면 많은 생각들을 가지 쳐낼 수 있다. 나는 본래 생각이 많다. 수 가지의 생각들이 동시에 뻗어나가서 산만하다고 불릴 수도 있을 정도로 여러가지를 동시에 판단한다. 이 판단은 빠를 경우 직관적인 판단으로 보일 수 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내 짧은 인생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도출된 논리적인 판단이다. 다만 일을 하는데는 굉장히 비효율 적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특성상 너무나 많은 것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나를 못이기고 내 생각은 다른 것에 가지를 치고 있다. 집중을 하면 할 수록, 하찮은 것들을 동시에 생각하고 있다. 내 집중력은 복잡한 인과가 얽혀있을 수록 빛이나는 것이 여기에 근거한다.

 

레포트를 쓸 때 나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되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없다. 한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능력이 떨어져서 한가지 밖에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보다 술을 마신 후 월등한 능률로 레포트 작성을 완료한다.

 

요즘은 망각을 위해 술을 많이 마신다. 올해는 어느때보다도 집중을 하기 어려운 한 해였다. 우습게도 연인과의 관계 때문이다. 관계가 위기에 있게 되면서 거의 모든 시간 내 사유의 한쪽 가지는 언제나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일을 할 때 집중을 해야 하지만, 언제나 떠나가지 않는 관계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나는 아직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아서, 사랑 따위에 내가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단 칼에 해소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 문제를 1년 가까이 끌고 있다니. 누군가가 욕을 해주거나,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라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쨋든 나는 이렇게 해소할 수 없는 생각들에 괴롭힘 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되면 내가 하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되고, 잠시나마 그녀를 잊을 수 있다. 그리고 기분도 나아진다.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고 싶다. 그런데,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술을 마시면 내 눈앞의 시야가 더욱 분명해지는 이 좋은 느낌을 놓치기 싫은 것인지, 밤마다 맥주 한 캔 씩을 먹고 있다.

 

지금도 맥주 한 캔을 하며, 불필요한 필터링이 많지 않는 이 순간, 나는 글을 쓴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내 생각을 가감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분명한 생각을 손으로 배설을 하고 있다.

 

나에게 술은 기쁨의 술에서 해갈의 술을 거쳐 지금은 망각의 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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