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우리의 주식이다. 주식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사에서 만날 수 있는 쌀은 너무나도 흔하다. 우리는 식당에 가면 공기밥에는 가격이 없거나, 차림표에서 가장 저렴하게 제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상품의 가격은 그것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쌀의 경우에는 그 공급은 수요에 비해 많기 때문에 무척 저렴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나마 있던 수요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쌀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쌀은 다이어트의 적으로 분류되어, 가장 먼저 줄여야 할 식사 요소로 꼽히고 있다. 우리는 쌀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쌀은 우리의 이런 초라한 대접이 아직 익숙지 않다.

 한반도 사람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쌀농사를 지어왔다. 하지만 쌀밥을 주식으로 하기에는 생산량이 넉넉지 않았다. 삼국시대를 거치며 생산량이 증가하였으나, 우리 조상들은 주식으로 쌀은 엄두도 못 내고 여전히 콩 조 기장 등의 잡곡밥을 먹었다. 쌀농사에는 기후적인 제약조건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벼농사는 성장기에 고온다습한 환경이 꼭 필요하지만, 한반도에서는 그런 기후조건은 오직 여름에만 가능했다. 게다가 추위를 견디는 능력도 그렇게 좋지 않아서 남쪽 지역에 농사가 집중되었다. 하지만 줄기당 얻을 수 있는 낱알의 수는 다른 작물보다 훨씬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꾸준히 수확되어 왔다. 그러므로 쌀은 적은 수확량으로 인해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옛날부터 극단적인 풍요로움과 빈곤의 주기를 매년 이겨내 왔다. 가을에는 여러 작물들을 한꺼번에 수확함으로 풍요롭고, 봄에는 마땅한 소출이 없고 비축해 놓은 식량도 모자라게 되어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었다. 그래서 봄에서 초여름 보리가 수확되기 까지를 보릿고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아마 고개를 넘는 것처럼 시기를 보내기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해 쌀농사의 성공 여부는 다음 해를 어떻게 넘기는지 와 깊은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쌀은 자연히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이 점은 제사상에 맛 좋고 부드럽게 정미된 흰쌀밥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만큼 조상들은 흰 쌀밥을 귀한 음식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사람들은 쌀을 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우리가 쌀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된 역사는 40년이 채 되지 않는다. 6.25 전쟁 이후에는 심하게 쌀 수확량이 줄어들어서 해외 식량 원조를 통해 공급된 밀과 옥수수로 사람들이 연명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 생산성 좋은 새로운 품종의 벼가 개발되었고,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되었다. 동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던 자포니카종 벼와, 생산성 좋은 인디카 벼의 교잡으로 탄생된 이 벼는 통일벼라고 불렸고, 그 벼는 쌀 자급률 100%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사람들은 통일벼가 안겨준 높은 쌀 생산성 덕분에 더 이상 보릿고개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 되었다. 가을에 수확된 쌀은 해를 넘겨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보릿고개로부터의 해방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3000년 넘게 그토록 귀했던 쌀이 풍요로워지자 사람들은 무척 기뻐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통일벼로 시작된 품종은 맛을 더욱 좋게 하는 등 계속 개량되었지만, 쌀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쌀에 바라는 것이 없다. 사람은 항상 있는 것들에서는 소중히 생각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쌀이 부족하지 않게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3000년 동안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형성하였던 쌀이 40년 만에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가치를 빠르게 잃어가는 현상은 바람 직 하지 않다고 본다. 쌀 문화는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기에, 관심을 주고 아껴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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